발간물 연구보고서, 정기간행물 등의 최신발간물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연구보고서

형평과 효율의 조화 : 경제정의를 중심으로
형평과 효율의 조화 : 경제정의를 중심으로 Harmony of Equity and Efficiency in Economic Justice
  • 발행일 2011-10-31
  • 페이지 287
  • 총서명 [연구보고] 11-24-01
  • 가격 10,000
  • 저자 전재경
  • 비고 2011 협동과제 - 법질서의 경제적 함의와 가치확립 방안(Ⅱ)
미리보기 다운로드

Ⅰ. 배경 및 목적

법이 규정하는 준칙이나 규범은 대체적으로 정의(justice)를 이념, 즉 궁극의 가치로 삼는다. 물론 정의는 시대에 따라 가변적이다. 시장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추구한다. 시장이 추구하는 효율(efficiency)은 형평과 함께 정의의 부분집합이지만 때때로 형평과 충돌한다. 효율은 비교적 보편성을 띠지만 형평(equity)은 구체적 상황에 맞게 각색된 정의이다. 법과 경제가 서로를 억압과 경쟁의 대상으로 여겨 서로 발목을 잡는 사태를 빚지 아니하려면, 법과 경제는 “법질서의 경제적 함의”와 같은 현상학적 고찰을 넘어 가치론적 성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연구는 지난 2년 동안 수행되었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과제 『법질서의 경제적 함의와 가치확립 방안연구』의 제2년차 결과물이다. 제1년차(2010년) 협동연구[기초연구]가 자유주의 내지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세계화에 당면한 경제적 함의를 중점적으로 고찰하였음에 비하여, 제2년차(2011년) 협동연구[응용연구]는 공공선 등의 미덕과 정의(justice)의 이념을 배경으로 종래 理性에 기초하였던 「憲法」의 가치체계를 재구성하고[총괄편], 이를 경제질서와 사회질서에 적용한다[응용편]. 이 연구[총괄편:經濟正義硏究]는 「憲法」질서를 근간으로 하여 정부와 시장 중심의 형평과 효율의 조화를 뒷받침하면서 정부와 시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공동체와 미덕의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치 확립 방안을 모색한다.

 

Ⅱ. 주요내용

□ 현상분석

법질서가 추구하는 가치를 논하기 전에 경제질서의 현상을 분석하고 법질서의 경제적 함의를 진단한다. 먼저 경제동향을 살핀다. 세계는 2008년말 이후 동시불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1년에는 유러 통화권의 경제위기가 가시화되었다. 중국은 최근 고도성장을 유지한다.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린다. 미국은 양적완화 등을 통하여 경기부양을 도모한다. 한국은 무역 1조(trillion)달러 시대를 맞이하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였다. FTA체제에서 조야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FTA체결 이후 국내이행 법령들이 정비되었고, FTA로 손해를 보는 산업이나 계층을 위하여 특별예산들이 배정되었다. 그럼에도 자유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나 개인들의 구조조정 또는 적응을 지원하는 제도적 접근이 미흡하다.

경제구조를 거시적으로 보면, 현대 세계를 결정짓는 체계는 자본주의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자본주의[정부주도성장모형]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 등에 힘입어 압축성장을 이룩하였다. 21세기 중국의 고도성장이 중국식 개혁개방(Beijing Consensus)의 성과인지 아니면 서구식 자본주의(Washington Consensus)의 성과인지에 관하여 의견이 갈린다. 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유지하여야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세계화는 전체 국부를 향상시켰지만 동시에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선진국들은 높은 정부부채로 시달린다. 공공부채가 GDP의 90%를 넘어설 때 경제성장을 억누른다. 한국정부는 30%선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금융자본과 증권시장의 행보를 둘러싸고 비판이 많다. 경제위기와 빈부격차는 월가시위를 확산시킨 원동력이다. 통화옵션(KIKO)상품은 위험의 공평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한국경제는 빈곤화의 성장을 겪고 있다. 기업들이 부를 축적하였음에도 서민경제가 어려움을 느끼는 현상은 양극화를 시사한다. 한국경제의 체질이 점차 허약해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2011년 현재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조짐을 보인다. 장기지정전망추계(2011년 7월)에 따르면 정부부채가 증가할 전망이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대졸 이상 학력자의 비중이 31.5%에 이른다. 소득불균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양극화의 결과는 중산층의 감소로 나타난다. 중산층의 붕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해법으로 내수확충과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고용창출이 요구된다. 빈곤의 덫에 갇힌 소외계층들에 대한 지원이 요청된다.

법학은 경제질서에 시금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은 경제발전을 뒷받침하지만 舊式(old paradigm)에 집착할 경우에 경제발전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평등주의는 理性의 時代를 지배한 사회철학이었다. 공평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등주의의 약점을 극복하였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 이후 세계경제를 주름잡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법철학은 정의론으로 회귀하고 있다. 법치국가원리 내지 법치주의는 정의(justice)를 담아내는 法式(legal paradigm)이다. 법치국가와 민주주의의 실현은 자본주의 모형과 관계없이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다. 현대 헌법질서는 경제질서를 조정한다.

□ 정의론

경제질서에서 형평(equity)과 효율(efficiency)의 조화를 모색하기 위하여서는 사회윤리적 기초로서 정의에 관한 교설들을 성찰하여야 한다. 정의론의 역사는 유구하다. 정의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하여 공리주의, 비판주의, 신칸트주의, 상대주의, 계약주의를 거쳐 최근에 다시 인구에 회자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원리를 평등에서 구한다. 평등에는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이 있다. 상대적 평등은 불평등한 것을 불평등하게 대함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정의는 미덕 그 자체가 아니라 실현된 미덕에 따라 영광과 보상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도덕적 미덕은 공동체(community) 생활을 통해 습관과 행동으로 실현된다.

J.벤덤에 따르면, 공리[有用性]를 극대화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올바른 행위이다. 벤덤의 공리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지닌다. J.S.밀에 따르면, 정부는 다수가 믿는 최선의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하여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밀은 개인의 존엄가치보다 이익이나 욕구를 우선시킨다.

I.칸트의 도덕률은 “네 의지의 격률이 동시에 보편적 입법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定言命令으로 압축된다. 도덕과 법은 개념이 다르다. 합법적인 행위가 도덕률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덕률이 존재하기 위하여 우리의 의지는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는 생래적인 유일한 법이다. 자연법 또는 이성법은 자유를 기초로 한다. 칸트에 따르면, 법이란 그 아래에서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조건의 총칭이다. 모든 이성적인 존재는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실천이성을 연마하여 도덕의 최고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 절대정직을 강조한 칸트는 경우에 따라 부분의 진실만을 말하는 ‘교묘한 회피’를 용인한다.

신칸트주의에 속하는 R.슈타믈러는 법이 개인의 목적과 사회의 목적을 조화시키는 한 ‘법의 지배’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로이 의욕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상사회로 보고 변화하는 내용을 가진 자연법을 ‘正法’으로 천명하였다. G.델 베끼오는 법이 여러 개인들의 행동을 윤리적 원리에 따라 객관적으로 조화시킨다고 보고 양면성ㆍ명령성ㆍ강제성을 법의 특징으로 파악하였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최고기능은 사회복지를 전반적으로 증진시키는 것이다. H.리케르트는 構成主義에 기초하여 “인식방법에 따라 대상이 제약된다”는 문화과학의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E.라스크는 이를 법학에 적용하여 ‘사회적 사실’로서의 법을 연구하는 법사회학과 ‘규범의미의 복합체’로서 실정법규를 연구하는 법해석학을 구분하였다.

신칸트주의의 약점은 이상과 현실을 대립시켜 가치와 존재를 준별하는데 분주한 나머지 법의 이념을 ‘내용 없는’ 형식에서 찾고자 한 점이다. G.라드브루흐는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하여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그에 따르면, 관찰자의 인식주관에 따라 거기에 대응하는 소여(Gegebenheit)가 달라진다. 최후의 당위명제는 입증할 수 없으며 고백할 수 있을 뿐이다. 법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법적 안정성을 필요로 하지만 정의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다. “정의의 형식은 평등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합목적성(Zweckmassigkeit)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정의는 법의 목적에 부합하여야 한다.”

불평등은 자유주의의 약점이다. 사회계약론을 승계한 계약주의는 사회의 가장 약자[최소후생계층]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한에서만 불평등이 합리화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자로 알려진 J.롤스는 사회계약이 체결되기 이전의 상황을 “평등한 원초적 입장”으로 이해한다. 사람들은 ‘무지의 막’(veil of ignorance) 속에서 ‘원초적 계약’을 체결하여 정의의 원칙들을 선택한다 : “각인은 타인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자유우선의 원칙 : 정의의 제1원칙]. “사회적ㆍ경제적 불평등은 ①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고(최소후생의 극대화) ② 직책과 직위는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두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차등의 원칙 : 정의의 제2원칙]. 롤스는 분배의 불공정이 제도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 M.프리드먼에 따르면, 불공평이야 말로 이익의 원천이다.

M.J.샌델(Sandel)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따라 시장에서의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정의(justice)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삶의 본질을 논하지 않고서는 공정성을 말할 수 없다. 샌델은, 인간을 서사적 존재로 본 매킨타이어(MacIntyre)의 방법론에 따라 ‘이야기하는 존재’로서의 ‘우리’를 매개로 하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로, 즉 존엄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변모시킨다. 입법과정에서 ‘삶의 본질’에 관한 성찰이 이뤄진다면, 법은 ‘이익조정의 기술’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존엄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샌델은 “사회조직의 목적(telos)을 확인한 뒤에 각자에게 그의 것을 준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적합성’의 명제를 “각자의 자격에 맞는 공직과 영광을 주고 본성에 어울리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새긴다. 그는 목적론적 정의관을 바탕으로 “빈부격차가 과도하면 연대의식을 약화시키고…공적영역이 공허해지면 민주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짐을 전제로,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시민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추론한다.

□ 경제정의론

“각자에게 그의 것을 준다”는 정의관에서도 누가 어떻게 각자의 것을 줄 것인가가 문제된다. 국가주의 내지 개입주의는 각자의 것을 정부가 분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장주의는 각자가 시장을 통하여 그의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공동체주의는 각자가 공동체를 통하여 그의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자유를, 시장은 이익을, 그리고 공동체는 명예를 각자에게 줄 수 있지만 구체적 선택은 시대가 선택한 이념에 따라 달랐다.

R.노직(Nozick)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1974)에서 유형화된 정의론을 거부하고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이론을 옹호하였다. 1980년대는 자유지상주의의 시대였다. F.하이에크는 “경제평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강압적이고 자유사회를 파괴하기 마련이다”라고 주장하였다. M.프리드먼은 최저임금을 획정하고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계약의 자유를 간섭하는 행위로 보았다. 공공역무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자격제도나 면허제도도 선택의 자유를 부당하게 간섭한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자유를 부릴 능력이 없는 개인에게는 자유가 장식물에 불과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선택의 자유는 시장이 선호하는 핵심가치이다. 1980년대 이후 30년간 대부분의 나라가 자유시장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자유시장 정책은 성장이 둔화되면서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기에 이르렀다. 공동체 경제는 불완전 시장경제의 단점을 보완한다. 시장경제가 얼굴 없는 자본주의를 숭상하고 배타적 경쟁 속의 지배를 추구함에 비하여 공동체경제는 ‘관계’ 속의 공존을 지향한다. 공동체의 경제정의론은 “공동체에 적합한 것은 공동체에 맡긴다”는 윤리를 포함한다.

□ 법질서상의 가치체계

근대 시민사회의 정의는 이성을 도구로 삼고 자유와 평등 원리에 근거하여 각자의 이익을 균등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자유와 정의의 가설은 빈번하게 부정되었다. M.샌델의 언명처럼 빈부격차는 민주사회의 결속을 방해한다. 인간은 존엄하지만 이성은 동등하지 않다. 현대법이 상정하는 인간상은 경쟁력을 갖춘 달인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변인으로 구분된다. 경제정의는 분배정의를 표방하지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법을 이용하여 미덕을 권장하거나 도덕적 신념을 표현하려는 행위나 과세를 이용한 부의 재분배에 반대한다. 그러나 양극화 사회에서 경제질서는 시장의 정의만으로 완성될 수 없고 공동체의 정의[미덕]로 보완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는 공동체이며…모든 공동체는 선을 목표로 성립한다.”[아리스토텔레스]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은 보편적 인간성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요소이다.”[J.J.루소] 공동체는 쓸모가 없는 인간에게도 합당한 존경과 명예를 부여한다.

헌법은 유용성이 떨어지는 인간에게도 공리주의를 넘어 존엄가치를 보장한다. 1987년의 한국 헌법은 정의와 법적 안정성 그리고 합목적성이라는 법이념을 구현한다. 법은 정의와 미덕의 구체화를 목적으로 한다. 각국 헌법은 법률문화의 전통에 따라 법치국가[독일], 법치주의[일본], 법의 지배[영국] 내지 적법절차와 평등보호[미국] 등의 이념을 통하여 정의를 전개한다. 경제적 풍요가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윤리적 가치의 빈곤과 도덕적 갈증을 호소한다.

한국의 헌법질서는 기본가치와 파생가치를 규정한다. 기본가치는 양태와 목적에 따라 ① 존재가치[최소한의 소극적 가치:존엄ㆍ평화]와 ② 행동가치[중립적 기본가치:평등ㆍ민주주의] 그리고 ③ 후생가치[최대한의 적극적 가치:행복ㆍ공공복리]로 구분할 수 있다. 파생가치[자유권ㆍ재산권ㆍ정체성ㆍ인류공영]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국제 영역에 걸쳐 기본가치를 구체화시킨다. 헌법에 규정된 가치는 그 정립보다 실현이 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실체와 적용을 둘러싸고 항간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진ㆍ선ㆍ미의 가치실현에 있어 어떠한 정치적 역할도 주장하지 않는 이념이다. 법질서의 경제적 함의와 관련하여서는 헌법상 재정ㆍ경제 부문에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전개를 성찰할 수 있다. 헌법상 재정질서는 예산규범과 결산규범, 국채와 국가부담계약에 관한 규정 및 조세법률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헌법상 경제질서는 자유주의를 기본질서로 삼으면서 개입주의를 보충적으로 운용한다. 재정ㆍ경제질서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그러나 법치국가원리 내지 법의 지배 원리는 특정한 가치체계라기보다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법식(legal paradigm)이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 헌법상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측면을 포괄한다. 헌법질서에서 자유주의는 창의와 경쟁 및 효율을 선호하지만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는 형평과 협동을 요구한다. 헌법이념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재정질서의 건전화가 요청되며, 시장질서에 대한 정부개입의 한계를 설정하고 준칙주의를 확대시켜야 한다.

□ 경제질서와 법제의 대응

경제질서는 시장경제 질서와 공동체경제 질서를 포함한다. 시장경제질서 부문에서는 상생발전을 지원하는 법제의 개선이 절실하다. 특히 FTA 시대에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과 계층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요청된다. 금융산업이나 주류산업에서는 대정부 로비를 통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규제를 획득하는 이른바 ‘규제포획’이 극복되어야 한다. 방송통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큰 ‘서비스’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져야 하고 융ㆍ복합을 유도하여야 한다. 요율규제에 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전기요금ㆍ아파트분양가ㆍ이자율ㆍ카드깡ㆍ카드수수료 등에 관하여 정의의 원칙이 통용되어야 할 것이다. 부자증세를 실천하기 위하여서는 세제 전반에 걸친 단순화와 투명화가 필요하다. 헌법이 규정하는 국민개세(皆稅)주의의 실천과 조세부담율의 재편도 강구되어야 한다.

공동체경제질서 부문에서는 공동체의 부활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요청된다. 공동체경제는 시장경제와 만나면서 시장경제의 속성을 닮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공동체 자원의 이용에 있어 공유재산의 법리가 혼선을 빚고 있다. 미국의 경우 쇠퇴하는 인디언 공동체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방편으로 카지노와 같은 사행산업을 특허하였지만 도덕적 해이와 정체성의 혼란이 공동체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동체 경제질서는 사회적 연대에 기반을 둔 시민의식을 기초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서는 공동체에 알맞은 산업과 방법론을 특화시키고 생산과 유통 및 소비 부문의 공동체를 육성하며 지역간 또는 부문간 교류가 촉진되어야 한다. 공동체경제는 자본주의 시장의 경제적 자본에 버금가는 신뢰와 협동 및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Ⅲ. 결 론

□ 가치관의 정립

미덕이나 공공선은 법질서의 근간을 형성하지만 이러한 가치가 법제화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의 확립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회경제적) 공동체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일상의 약속에서부터 사회적 약속[盟約]에 이르기까지 신의성실ㆍ권리남용금지(民法 제2조)와 같은 도덕률을 실천하여야 한다. 전통문화 속의 예(禮)의 관념과 그 부활은 도덕률의 정립에 이바지할 것이다. 禮는 법과 도덕의 만남을 유도한다.

가치관의 확립을 위한 정의(justice) 관념의 재검토가 요청된다. 보편주의가 지나쳐 절대적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형평이 숨을 쉴 수 없고 정당한 부에 대한 존중이 불가능하다. J.색스(Sacks)의 견해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문화가 없고 부와 권력만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미덕에 의한 담론을 통하여 정의의 내용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공공선ㆍ충실성ㆍ자선과 같은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가치의 중점이 공리에서 신뢰로 이동되어야 한다.

□ 가치확립 방안

가치관의 실천은 정립보다 어렵다. 고정관념의 탈피를 유도할 수 있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공평한 조정자로서 대중의 인식변화를 유도할 책무를 진다. 신자유주의의 장점보다 약점에 더 많이 노출된 시장의 태도변화가 절실하다. 자본주의 본연의 ‘소명의식’이 회복되어야 한다. “효율을 강조하는 시장원리는 비시장 영역들에 적용되는 규범의 질을 떨어뜨린다”[M.샌델].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빈곤을 극복하는 처방은 내부로부터 나온다”[D.S.랜즈]. 공동체는 사회계약의 주체로서 자주성의 정립, 즉 주인정신의 회복을 이룩하여야 한다. 공동체를 결집시키고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자기 공동체만의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이 조명을 받는다. J.P.사르트르는 “인간은 언제나 이야기꾼이다”라고 단정하였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공동체 정신을 창조하고 그에 필요한 규범 및 공유재산(commons)과 같은 물적기반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시장이나 공동체 모두 자율과 책임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자율의 확대는 공법적 개입의 축소와 사적 자치의 확대를 의미한다. 먼저 계획경제에 기반을 둔 법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각종 행정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명령과 통제의 구사는 舊式(old paradigm)이다. 공생발전을 도모하자면 협치(governance)를 바탕으로 하는 유연한 新式(new paradigm)에로의 전환이 각종 법령에서 이뤄져야 한다. 다음에 사적자치의 확대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반사회적 행위나 불공정 거래행위 등에 대한 무효를 규정하는 ‘준칙주의’를 확장시켜야 한다. 그 다음에 행정청이나 담당 공무원들의 재량이 존중되어야 하고 대중영합을 목표로 하는 공약남발 또는 과잉개발과 같은 권한남용 내지 공공선택 오류가 방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풍토의 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경제주체는 무엇인가를 획득하면 그것을 계속 보유하기를 원한다. 독점을 향한 배타적 경쟁이 지양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경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협동하는 유연함이 강구되어야 한다. 협동의 모형으로 전통문화의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전력이 비슷한 두 팀이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팀 지도자에 대한 팀 구성원들의 믿음과 서로 단결하는 협동력이 승패를 가른다. 협동 없이 경쟁만 일삼는 시장이나 공동체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외부의 힘에 의하여 궤멸될 수 있다. 나아가, 도덕적 해이가 극복되어야 한다. 도덕적 해이는 세계사적으로 초미의 과제이다. 도덕적 해이와 부패는 멸망에 이르는 병이다. 정경유착이 비난을 받는 까닭은 재원의 편중과 부패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집단 구성원들의 풍토개선, 즉 문화변동을 통하여 도덕적 해이와 부패가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Ⅳ. 기대효과

□ 예측가능성을 통한 경제발전의 촉진

예측가능성이 확보된 법질서는 거래를 촉진시키고 사기와 부당이득을 방지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 이 연구는 우리 경제정책을 규율하는 법질서의 예측가능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 경제규제 개혁에 이바지

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서는 정부가 시장이나 공동체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ㆍ시장ㆍ공동체가 협력하는 방식 즉 협치(governance)를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이 연구는 경제정책을 형성하고 규율하는 법질서가 정부 중심의 통치방식에서 민관협치 방식(패러다임)으로 발전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1장 서 론 29

1절 연구배경 29

2절 연구범위 37

3절 분석의 틀과 방법 44

4절 기대효과 52

 

2장 현상분석 55

1절 경제동향 55

2절 경제구조 63

3절 한국 경제의 전망 77

4절 법질서의 대응 93

 

3장 경제질서와 정의 99

1절 정의론 99

2절 경제정의론 126

 

4장 법질서상의 가치체계 139

1절 변증법적 발전 140

2절 헌법이념의 구조 148

3절 헌법가치의 분석 151

4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전개 156

 

5장 경제질서와 법제의 대응 167

1절 시장경제질서와 법제의 대응 167

2절 공동체 경제질서와 법제의 대응 217

 

6장 가치확립 방안 237

1절 가치관의 정립 237

2절 접근방법 247

 

참고자료 1 : 선행 협동연구(2010) 요약ㆍ결론 265

참고자료 2 :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품목 273

참고자료 3 : 과세소득 원천기준 [각국사례] 275

참고자료 4 : 법규 위반과 보험료의 연동 279

285

의견쓰기 : 이름, 이메일, 의견등을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름
이메일
본서에 대한 의견, 저자에 대한 요망 등
공공누리 1유형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
"법질서" " 정의" " 법적안정성" " 경제발전" " 경제정의" " 형평" " 효율" " 상대적 평등" " 이성" " 자유주의" " 민주주의" " 국민주권주의" " 개인주의" " 공리주의" " 평등주의" " 무지의 막"
저자
관련보고서 [ *이 연구보고서의 관련 저자는 "전재경" 입니다.]